연재 순서
1부 | 법인과의 거래에서 돈을 받지 못한 경우
2부 | 상호 속용과 양수인의 책임
3부 | 회사의 이사가 부담하는 손해배상 책임
4부 | 회사라는 이름 뒤에 숨은 사람
5부 | 폭행을 당했을 경우 유의할 점
6부 | 형사합의금, 얼마가 적당한가
7부 | 술자리 이후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준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8부 | 프리랜서와 퇴직금
9부 | 사업상 자금 융통으로 채권을 양도하는 경우 주의할 점
10부 | 외국인 배우자가 도망갔을 때, 이혼할 수 있을까?
11부 | 집주인이 수리를 미룬다면…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
12부 | 원사업자가 잠적한 경우, 수급사업자는 대금을 받을 수 있을까?
13부 | 경찰 조사를 처음 받는다면 알아야 할 것들
14부 | 토지거래허가구역 계약, 허가 전에도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15부 | 범죄 목적을 숨기고 들어간 타인의 주거, 주거침입인가?
16부 | 타인을 사칭하여 인스타 계정을 개설하는 경우도 처벌될 수 있다
17부 | 강제추행은 언제 성립할까?
18부 | 누수가 발생해 공사를 해야 할 때, 임차인이 공사 방법까지 결정할 수 있을까?
19부 | 공인중개사의 설명의무는 어디까지인가?
20부 | 주택가에서 욕설하면 모욕죄가 성립할까?
21부 | 세무사와 위임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상담만 받은 경우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22부 | 무연고로 개장된 조상 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23부 | 캄보디아 사기조직, 조직 전체의 범죄를 개인에게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
글 | 홍승권 법무법인 판 변호사 (skh@law-pan.com)
최근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을 거점으로 한 투자 사기·로맨스 스캠·가상자산 사기 사건이 잇따라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기 범죄는 몇 명의 공범이 피해자 한두 명을 속이는 형태가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하나의 건물이나 단지에 수십 명을 모아 놓고 피해자 모집, 상담, 투자 권유, 송금 유도, 자금세탁 등의 업무를 세분화해 수행합니다. 일종의 기업형 범죄조직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이러한 범죄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역할 분담입니다. 누군가는 피해자에게 처음 접근하고, 누군가는 상담을 이어받으며, 다른 사람은 투자 사이트나 계좌를 관리합니다. 피해자 한 명을 상대로도 여러 사람이 순차적으로 관여할 수 있습니다. 조직 전체에서 거액의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개별 구성원의 가담 기간과 관여한 피해자 수, 의사결정 권한, 취득한 이익은 서로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스캠 단지에는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조직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동일한 성격의 범죄자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정상적인 취업이라고 생각했더라도 범죄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속였다면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언제 범죄의 성격을 알게 됐는지, 자유롭게 이탈할 수 있었는지, 협박이나 감시를 받았는지, 얼마 동안 범행에 관여했는지, 어떤 권한을 갖고 있었는지를 개별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형법 제30조는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죄를 범한 경우 각자를 정범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합니다. 공동정범을 인정하려면 공동가공의 의사와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어야 합니다. 공동정범에 해당하는지는 범행 과정에서 각자가 맡은 지위와 역할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 판단해야 합니다.
따라서 캄보디아 사기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조직 전체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곧바로 부담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범죄 구조를 이해하면서 역할을 나누어 수행하고 다른 조직원의 행위를 서로 이용해 범행을 실행했다면 책임 범위가 넓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상대하지 않은 피해자에 대한 범행까지 공동정범의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동정범이 성립해 조직 전체의 범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담하더라도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형벌이 내려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형법 제51조도 형을 정할 때 범행의 동기와 수단,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개별적으로 고려하도록 규정합니다. 따라서 양형 과정에서는 각 구성원이 직접 속인 피해자의 수와 피해액, 가담 기간, 조직 내 지위, 범행을 계획하거나 지시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야 합니다. 다른 조직원을 모집·관리했는지, 범죄수익을 얼마나 취득했는지도 중요한 판단 요소입니다.
조직범죄는 여러 사람의 행위가 결합하면서 거대한 피해를 만들어 냅니다.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큰 만큼 피의자들은 수사 단계부터 무거운 책임을 부담하게 됩니다. 조직 전체가 저지른 범죄를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조직이 발생시킨 거대한 피해액 자체가 개별 구성원의 구체적인 책임을 대신하도록 해서도 안 됩니다.
조직범죄를 엄정하게 처벌하면서도 각자의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전체의 범죄 구조와 함께 구성원 개개인의 가담 경위와 역할, 권한, 이익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이것이 조직범죄에 합당한 책임을 묻는 출발점입니다.
필자 소개
홍승권은 법무법인 판 소속 변호사로, 민사·형사소송을 비롯해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법률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술 혁신과 재산권 질서, 규제정책의 변화가 법과 시장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